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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는 "Happy birthday to you"인데 1936년 밀드레드와 패티 힐이 작곡했다. 이 곡은 아직도 로열티를 받는다.


전세계가 애창하는 "White Christmas"는 어빙 리빙스턴이 작곡했는데,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않아 읽고 쓸 줄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를 그의 비서가 듣고 받아 적은 것이다.


베토벤,드보르작,말러,윌리암스등은 모두 10번 교향곡의 희생자들이다. 모두 9번을 작곡하고 죽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죠셉 모르"라는 목사가 3시간만에 작곡했다.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에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악보 없이 교향곡을 연주했다. 너무나 눈이 나빠 바로 앞의 악보도 볼수없어서 악보를 전부 외워야만 했던 것이다.


고전음악의 아버지 "바하"도 죽은지 100년이 지나서야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곡을 제대로 연주할 사람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섯 곡밖에 작곡을 하지 않았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귀신도 나와 춤을 추었다고 할만큼 기교가 뛰어났다 한다.


작곡가 리차드 바그너는 평생 13이란 숫자와 함께했다. 그가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난건 1831년인데 모두 더하면 13이다. "탄호이저"를 완성한날이 4월 13일이며 "니벨룽겐의 반지"도 1876년 8월 13일날 처음 연주되었다. 그가 리가에 있는 주립 극장의 대표가 되었을 때 그 극장은 9월 13일날 개관했다.그는 13개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13년간 망명하고 독일이 새 연합국이 된지 13년째 되던 해에 13번째 날에 죽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베리우스는 1644년에 태어났다.바이얼린을 배운뒤 바이얼린을 만드는데 흥미를 느껴 18세에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바이얼린 제작자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공이 된후 1680년부터 나름대로의 요령을 터득하여 자립해서 바이얼린을 만들었다. 그의 바이얼린은 곧 아주 유명해졌고 40세가 되어서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94세까지 1116개의 바이얼린을 만들었는데 그는 바이얼린만드는 비법을 알리지 않고 죽었다. 심지어는 그의 아들조차 몰랐다.1737년 그가 죽은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얼린의 비밀을 캐는 연구가 시작되어 지금도 하고 있다. 1800년대 초기에 유명한 바이얼린제작자 "뷰이란"은 평생을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얼린을 연구했다. 여러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약간의 비법-도료나 나무의 종류 같은-은 알려졌지만 스트라디바리의 것만큼 은은한 소리는 내지 못했다. 250년전과 마찬가지로 그 바이얼린은 여전히 신비 속에 감추어져 있다. 또한 지금도 많은 바이얼린 연구가들이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구한다. 1979년에는 "후버만"이란 이름이 붙은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역사상 최고가로 팔린 바이얼린으로 그 당시 돈으로 29만7천250달러에 팔렸다. 지금은 1116개의 바이얼린중에 약 700여개가 남아있다. 어느 부호가 "정경화"의 바이얼린 연주회에 와서 그녀의 연주를 듣고는 완전히 반해 그가 소장하고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이런 귀한 바이얼린은 당신같은 뛰어난 연주가가 연주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경화양에게 주었다. 세계적인 연주회에서 그녀가 연주하는 바이얼린이 바로 그 스트라디바리우스인 것이다. 기타로서 유명한 것은 "카르넬리"란 사람이 만든 "카르넬리"기타이다.


존 하워드 페인은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을 작곡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으나, 그는 죽을때까지 "즐거운 집을 가져보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은 미국 사우스 다코다주 블랙힐즈의 러쉬모어산 중턱에 있는 네 대통령의 반신상이다. 워싱턴,링컨, 토머스 제퍼슨, 루즈벨트순으로 된 이 조각에서 얼굴의 길이만 18미터가 되므로 만약 전신상을 조각했다면 그 높이가 142미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조각은 "구트슨 보르그룸"이란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 절벽의 화강암을 수백만 톤이나 깎아 내었다. 그는 이일을 1927년에 시작,1941년 죽을 때까지 계속했고 그해 말에 그의 아들 "링컨 보르그룸"이 완성했다. 오늘날 90Km밖에서도 볼수있는 이 조각은 러쉬모어 국립기념관의 한부분으로 민주주의의 신전과 같이 여겨진다.


미켈란젤로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 그가 남긴 250편의 시와 소네트는 오는날에도 널리읽힌다.


그림 "모나리자"의 원래 이름은 "지오콘다"로서 플로렌스의 상인인 프란체스코 지오콘다를 위해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그린 것이다. 즉, 이탈리아어로 "모나"는 유부녀를, "리자"는 엘리자베스의 약어이다. 이 그림은 하루에도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하며 특별히 지키는 사람도 있고, 방탄유리로 덮여 있으며 보험료만도 $200000000가 넘는다.


1961년 10월 18일에 미국 뉴욕에 있는 현대 미술 박물관에는 이중섭이 모방했다는 헨리 마티스의 추상화 "르 바또"가 전시되었는데, 그뒤 47일동안 약 100000명이 이 그림을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사실 이 기간 동안 그 그림은 거꾸로 걸려 있었다.


피카소가 젊었을 때 그의 그림이 팔리지않는다고 모두 모아서 장작으로 써 버렸다. 그는 1876점의 유화,1355점의 조각, 2880점의 도자기, 11000점 이상의 스케치와 선화, 27000점의 동판화와 석판화들을 남겼는데, 지금싯가로 이 작품들 모두의 가격은 $250000000나 된다. 그는 1973년에 죽었다,


로댕은 1917년 겨울 어느 골방에서 얼어 죽었는데,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호화로운 박물관에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는 작품은 그 작가가 죽은지 60년이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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