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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펌]

2002.6.15.토요일

딴지총수


처음부터 진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경기가 시작하자 가슴이 터질 듯하고 손꾸락은 떨리고 온 몸에서 땀이 났지만 처음부터 진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왜냐.
우리는 강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믿지를 못한다. 우리가 강팀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그렇게 멋진 경기를 해서 유럽 5조 1위팀인 폴란드를 격파하고, 피파 랭킹 13위의 미국과의 게임을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마침내 피파랭킹 5위의 포르투칼을 이겼는데 아직도 믿지를 못한다. 우리가 강팀이란 걸.

그래서, 핀투가 우리 박지성이를 유도 가위후리기 기술로 백어택해서 퇴장을 먹고, 후반에 또 한 명의 선수가 경고를 연속 먹어 퇴장을 당하자, 우리가 이긴 것이 우리 실력이 아니라 포르투칼이 퇴장 당했기 때문이라며 더럽고 비겁한 경기라고 하는 사람들 있다. 미친다.

퇴장 안 당하는 것도 실력이다. 첫 번째 태클은 호각을 불지 않았다면 그건 오히려 매우 불공평한 것이었고 - 우리도, 포르투칼도 아니어서 편파적일 필요가 없는 영국의 BBC에선 박지성에게 파울한 순간의 사진을 걸고 캡션을 이렇게 달았다.

'핀토는 자신의 미친 듯한 행동에 대한 댓가를 지불했다'

두 번째 태글은 퇴장 당할 만큼은 아니지만, 엘로 카드를 받을 만큼이었다. 옐로 두 개 먹으면 퇴장인 건 우리가 그날 경기장에서 생각나서 만들어낸 만든 규칙이 아니라 FIFA가 수 십년 전에 만든 거다. 누가 엘로 하나 먹은 넘이 또 그렇게 험하게 태글하래. 포르투칼이 그렇게 옐로 카드를 무서워하지 않고 험하게 덤빈 건, 물론 경기도 격렬했지만 조별 예선에서 받은 옐로카드는 조별 예선에서만 누적되고 16강 전에서는 새로 카운팅 되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로 경고 누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기도 했을게다.


물론, 두 번째 건은 그 때 옐로카드를 줄 수도 있었고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건 심판의 재량인 건 맞다. 하지만 그 정도의 반칙에 옐로를 줬다고 그게 편파였나 하면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 다. 그러니까, 심판은 편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따지자면 매우 냉정했던 것이다. 기억하시라. 우리도 그 날 엘로 3개 먹었다는 걸.

그 퇴장들은 포르투칼과 일본 언론들 - 포르투칼은 당연하다 쳐도 일본 이 넘들 얄밉다. 홈 어드벤티지라고 한다. 하긴 우리도 걔네가 실력으로 잘 했을 때도 깍아내리고 싶어 하지.. - 정도를 제외하곤 세계 언론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정말 편파적인 건, 퇴장 당할 짓 했는데도 퇴장 시키지 않는 거다. 우리가 홈팀이니 포르투칼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 무릎이 뒤틀릴 만큼 백태클을 하는 데도 퇴장 시키지 말고, 까진 무릎 호호 불어주고 일으켜 세워서 이마 땀 닦아 줘야 만족하겠는가.

그렇게 스스로 더러운 게임이니 어쩌니 하는 건, 정의감도 아니고 페어플레이 정신도 아니고, 태어나 단 한 번도 이 정도 규모의 성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질병처럼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사는 만성적 패배주의가 만들어내는 불안감의 역설적 발현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기는 것이 맞는 건지.. 우리가 이렇게 강팀을.. TV 에서나 보던 그 유명하다는 선수들을.. 우리보다 훨씬 잘한다는 이 팀을 이렇게 이겨도 되는 것인지.. 저 선수가 퇴장 당한 게 우리 실력으로 안되니까 심판 돈 먹여서 그런 거 아닌지.. 대구리가 이런 승리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나오는, 거부 반응들이다. 상대팀이 말레이지아라도 똑같은 생각을 했겠는가.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우린 강팀이다. 난 이제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나는 것이 반갑다. 강팀들을 피해 운 좋게 8강에 가는 것보다 강팀을 만나 대구리 터지게 정면승부해서 이기든 지든 하는 게 이제 더 좋다. 그래서 일본이 약팀을 만났다고 좋아하는 거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제 지든 이기든 강팀이랑 맞짱 뜨는 게 더 좋다. 우린 강팀이거덩.

이번 게임에선 우리가 이길만 하니까 이긴 거다. 우리가 정당하게 페어플레이 해서 이긴 거 맞다. 그러니 우리가 비겁하게 승리를 뺏어낸 거라 생각하고 스스로 쪼그라들고 스스로 비아냥거리는, 만성적 패배주의에 찌들어 차분하기 짝이 없는 일부의 소심한 사람들아 이제 제발 그만 차분해 하고 흥분해서 발광을 하며 날뛰는 주변의 정상적인 인간들이랑 어깨동무하고 같이 마음껏 난리치길 바란다.

그래도 믿기지 않거든, 외국인들 시선 하나 알려 줄께. 인터넷에서 가장 큰 축구 전문사이트 중 하나인 Soccerage에서는 경기 끝난 직후 Best 와 Worst로 선수평점을 매긴다. 거기서 이번 경기 후 Best와 Worst는 이렇게 나온다.

Best - 도대체 누굴 뽑아야 하나. 모든 한국 선수들이 그들의 이룬 성취와 그들을 흠모하는 팬들의 넘치는 찬사를 받을, 완전한 자격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루이스 피구를 완벽하게 마크했던 송종국이 내 생각엔 Best가 아니었나 한다. 최진철도 실수 없이 돋보이는 선수였고.

Worst? 도대체 이런 성과를 거둔 한국팀에서 비난할 선수가 누군가. 이운재가 가장 조용한 경기를 했다. 그렇지만 그건 비판이 아니고..."

이제 그만 패배주의는 찌그러져 주시면 고맙겠다.

그리고, 피구가 울어 포르투칼이 불쌍하다.. 얄미운 미국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한 골 먹어줬어야 했다.. 포르투칼이 떨어지면 유럽에서 월드컵 관심 떨어진다.. 하는 소리도 이제 그만하자.

그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포르투칼 선수들을 불쌍해 하는 건 포르투칼 국민들에게 맡겨두시라. 그렇다고 포르투칼 선수들이 우리 관중들에게 계란으로 얻어맞았나 우리 선수들이 포르투칼 선수들 조슬 걷어차고 불알을 쥐고 흔들며 괴롭혔나. 우린 정당하게 경기했다. 포르투칼 선수들에게는 잘 가라고 곱게 손 흔들어주자. 그러게 누가 미국한테 지래.

포르투칼, 한국팀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랬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 없습니다. 세계 5위에게 세계 40위는 그냥 1승의 제물이었겠지만, 하여튼 씨바다. 개막 바로 직전에야 한국에 도착하고, 감독조차 한국에 대해 데이타가 없다고 했던 그들의 오만과 준비부족. 포르투칼은 스스로에게서 패인을 찾아야 한다.

왜 멋지게 잘 뛴 우리가 스스로를 탓하나. 유명 선수들이 경길 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하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강팀을 그냥 이길 리 없다고 스스로를 믿지 못해 스스로를 깍아내리는 건 이젠 하지 마시라.

하석주가 빽태클해서 퇴장 당해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이제 그 정도 골 넣었으면 됐건만 계속해서 숨 쉴 틈없이 몰아 부치는 네델란드에게 오대떡으로 비참하게 깨지고, 단 한 게임이라도 어떻게 해보겠다고 이미 탈락했는데도 머리가 깨지면서 육탄방어 하던 우리 선수들 보며 눈물 흘렸던 벨기에전.. 기억하는가..

폴란드가 이미 탈락했으니 대충할거고 어쩌고 하던 축구 전문가 타이틀 건 자슥들아 나가 디져라. 이건 월드컵이다. 월드컵에서 대충은 없다. 여기 한 번 나오려고 수 십년을 목숨 걸고 축구공 꽁무니 쫓아 뛰댕기는 국가가 도대체 몇 인가. 우린 1승 한 번 하려고 거의 50년을 뛰었다. 아직 단 한 번도 월드컵에 진출해보지 못한 국가가 100개국이 넘는다. 필리핀이 월드컵 언제 진출할 것 같은가. 사상 초유의 강팀이라며 16강 어쩌고 저쩌고 하던 15억 인구의 중국이 월드컵에 나와서 무득점에 무참하게 깨졌다. 16강하고 아무 상관없는 게임에 목숨 거는 폴란드를 보라. 이건 월드컵이다.

월드컵에서 승리했다고 거리로 몰려나와 버스 위에 올라타고.. 하는 외신을 볼 때마다 열정적인 남미애들이까.. 했었더랬다. 우리 가슴 속에도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더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 번도 그걸 끄집애낼 만한 일이 없었을 뿐이었던 게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기뻐해도 좋다. 혼신의 노력을 다해 페어플레이해서 얻어낸 이 승리에 가슴이 터져라 기뻐해도 정당하다. 미국이니 포르투칼이니 유럽의 월드컵 관심이니 다른 건 다 잊어버려라. 다만 몇 일이라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얻어낸 이 자랑스러운 대성공을 마음껏 만끽해라.

대한국민이여, 승리를 만끽하라.


그리고 잊지마라,


우리는 강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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